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라는 책은,
오랜만에 필기까지 해가면서 읽은 얼마안되는 책 중의 하나이다.
수업을 들을 때도 필기를 잘 하지 않는 내가
정말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지 하고 시작한 책이었다.
그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용서" 였다.
용서한다는 것_?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 라고 말씀하셨더랬다.
사실 어떻게 그럴수 있냐고 묻곤했다.
'나를,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상처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라고.
정말 싫은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는,
그 사람과 마주치기를 피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말하기를
'용서라는 것은 잔인한 행위에, 배신하는 행동에 대해
미움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일을 미워할 때
자기자신에게서 똑같은 것을 발견했을 때와 같이 미워하라는것.
즉, 사람이 왜 그런 짓을 저질러야 했으며
안타까워하면서, 할 수만 있다면 언제 어디에서 어떤 식으로든
치유되어 그의 인간다움을 되찾기를 바라라는 것이다.'
라고, 더불어 말하기를
'미워하기를 즐기지 말라. - 그런 미움은 계속 쳐내야한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분명 사랑할 부분이 없는 사람들도
사랑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할 부분이 있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나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자아들을 이와 똑같은 이유로,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장 어려운 것이 용서인줄로만 알았었다.
그렇지만 나에게 관대하듯 다른 사람에게도 관대할 수만 있다면,
그렇게 어렵게 풀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마찬가지로 내가 착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숨기고 싶은 나의 부끄러운 모습들은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먼저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나를 선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 날' _ 흔히 이야기하는 심판의 날이라는 것.
솔직히 아직까지도 개념이 명확하지는 않다.
기대된다거나 두렵다거나 하는 감정조차도 와 닿지 않는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아가야 하겠지만,
'그 날'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도 아름답게,
어떤이들에게는 너무나도 무섭게 다가올 수도 있다.
일어서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엎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 없는 짓 아니겠나.
내가 눈물을 쏟게 만들었던 그 찬양의 가사처럼,
한량없고, 갚을 수 없는 그 은혜,
그리고, 내 삶을 에워싸는 그 놀라움에 대해서,
너무 성급하지 않게, 천천히 다가가야겠다.
겸손함과 약간의 두려움과 기대감을 안고서.
'Something >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제선 비행기 향수병 (0) | 2009.10.02 |
---|---|
Cherry blossom (0) | 2009.10.02 |